<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 심너울, 위즈덤하우스
어릴 때 화장실에 앉아서 가장 진지하게 한 상상은 바로 '지구 어딘가에는 나와 똑같이 생긴, 지금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또 다른 내가 있지 않을까?' 였다. 그 사람도 나처럼 지금 변기에 앉아서 서로를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매년 쌓여가는 현실에 대한 인지는 '나처럼 이렇게 못생긴 사람이 또 존재할순 없지'부터 시작해서 어느덧 화장실에 앉아서는 펼치던 상상은 중단되었고, 20대가 되고 나서부터는 상상 대신 스마트폰에 나의 의식을 위탁하였다.
나는 심너울 작가의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라는 SF소설을 작년에 읽었다. 심너울 작가의 글이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바로 작가의 상상력이 내가 따라갈수 있는 수준(?)이어서 너무 즐겁게 따라 갈 수 있었던 점이다. 내가 SF 영화나 소설을 딱히 즐겨 찾지 않는 이유는, 작가의 상상력을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해서 재미를 크게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소설은 내가 충분히 그려낼 수 있는 세상의 이야기였고 나는 즐겁게 작가와 함께 소설 속을 거닐었다. 한편으로는 이 사람과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비슷해서 그런걸까?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도 하며, 작가에 대한 신상을 구글에 검색해보기도 했다. (결론은 모르는 사람이다. 학부 전공이라도 비슷한 전공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심리학과를 나오셨더라) 아무튼 작년에 너무나 즐겁게 읽었던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의 여파로 심너울 작가의 팬이 되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가 뭔가 나와 비슷한 느낌이었기에, 그의 사담이 많이 올라오는 트위터도 팔로우하게 되었다. 그와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내가 어릴 때 변기에 앉아서 상상했던 '도플갱어'와 같은 존재는 혹시 저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하면서 그의 트윗들을 수시로 읽었다.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는 심너울 작가의 에세이다. 그가 에세이 내에서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 평소에 가볍게 쓰던 트윗들의 확장판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글은 가볍지만, 한편으로 씁쓸한 감정이 찾아오기도 한다. 어디로든 튀어나갈 수 있는 소설 속의 세상과 달리 작가는 '현실'에서의 나처럼, 그 누구처럼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어쩔수 없이 내 자신을 그의 이야기에 이입할 수 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취업 때문에 상경해서 서울살이가 시작되어 버린 나의 모습을 그의 삶에 투영해서 보고, 좁디 좁은 방구석이 하루하루 좁아져 나를 집어 삼킬 것 같은 그런 나의 우울했던 순간들이 다시 살아나기도 했다. 그래도 그의 글들은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는데, 한강을 거닐때 나의 욕망을 자극하는 화려한 아파트만이 서울의 모습이 아니라 서툴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이러한 순간들이 진짜 서울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완독하고나서 생각나는 친구가 몇 명 있었다. 글을 잘 쓰던 친구, 서울로 대학을 와서 우울증이 생긴 친구, 취준에 힘들어하는 친구 등... 문득 이 책을 사서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창한 위로 따위보다는 그래도 우리가 잘 살고 있는 거라고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